폭염이 절정에 달하던 8월 어느 날, 포항에서 3시간의 뱃길을 달려 도착한 울릉도 도동항엔 광복 70주년을 앞두고 선착장 좌우로 태극기가 빽빽이 걸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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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절을 앞두고 태극기로 가득한 울릉도 도동항. |
“어린 학생이 뭣 하러 힘들게 육지에서 이까지 할배 보러 올라카노?”하시던 정원도 할아버지.
독도의용수비대 33인 중에서 현재 7명만 남은 생존자 가운데 한 분인 정원도 할아버지를 만나 1950년대 독도를 일본의 불법침입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애쓰셨던 그 시절, 그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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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의용수비대에서 전투2대장을 맡았던 정원도(87) 할아버지. |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겪으며 어지러웠던 우리나라의 사정을 틈타 일본은 1953년부터 독도에 불법 침입하여 자국 영토라는 푯말까지 세우고 독도 인근에서 고기잡이 하던 울릉도 어민들을 쫓아내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하지만 당시는 전쟁 중이었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독도를 지키기 위한 대처방안을 마련할 여력이 없었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참전했다가 명예 제대해 울릉도로 돌아온 홍순칠 대장을 비롯, 33명의 대원들로 결성된 ‘독도의용수비대’는 일본의 끊임없는 침입으로부터 우리 땅 독도를 지키기 위해 자발적으로 모인 순수 민간조직이었다.
그들이 처음 독도에 상륙한 건 1953년 4월 20일이었고, 이후 1956년 12월 30일 국립경찰에 수비업무와 장비 전부를 인계할 때까지 현재 우리나라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한 디딤돌이자 파수꾼이었다.
그들이 처음 독도에 상륙한 건 1953년 4월 20일이었고, 이후 1956년 12월 30일 국립경찰에 수비업무와 장비 전부를 인계할 때까지 현재 우리나라가 독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한 디딤돌이자 파수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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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경비초사 및 표석 제막기념 사진(사진= 독도의용수비대 기념사업회) |
“나는 울릉도에서 나고 자랐어. 1929년생이니까 올해 여든 일곱 살이지. 스무 살이 되던 1948년 군에 입대해서 삼척에서 공비 토벌을 많이 했지. 한국전쟁 중에 부상을 당해 1951년에 제대 후 집에 있는데 53년 쯤 홍순칠 대장이, 독도에 일본인들이 나타나고 일본 경비정이 와서 팻말을 꽂고 한다는 말이 있으니 우리가 군대도 갔다 왔는데 그냥 있어서 되겠나? 하더라고. 우리가 고향에 돌아왔으니 한번 막아보자, 독도를 지켜보자 했지.”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이니 7~8명으로 대부분 전쟁에서 부상당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우리 땅을 지키자’는 의견은 강했고, 그래서 시작한 것이 독도의용수비대였다.
모두가 가난했기 때문에 관청에도 알아보고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무기도 구하고, 배도 구하고 부식도 마련했다고 한다. 그러다가1953년 4월, ‘삼사호’에 올라 물골이 있는 서도에 도착해 대형 천막을 설치하고 그 곳에 지휘본부와 국기게양대를 설치했다.
“막사를 짓기 위해 울릉도에서 각목이랑 나무를 싣고 갔지. 모두 군인 출신이고 전투 경험이 있어서 위장을 잘했어. 그 때 우리 무기로는 M1 소총, 칼빈 소총, 경기관총, 박격포 등이었어. 박격포는 당시 가늠자도 없는 열악한 상태였지만 일본 배가 가까이 오면 대원 7~8명이 함께 쏴서 배 위에 명중시켰어. 주로 조준을 일본 배의 조타실로 했는데, 사격이 시작되면 일본 배는 깜짝 놀라 저 멀리 도망가서 한참을 바다에 피해 있다가 나중에 우리 정부에 항의하곤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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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대경으로 감시 중인 독도의용수비대원.(사진=독도의용수비대 기념사업회) |
서도에 온지 한 달만에 일본 경비정을 최초 발견한 이후 1953년 일본 수산실험선 ‘다이센’호, 1954년 무장 순시선 ‘오키’호, ‘나가라’호, PS9, PS10, PS16함 등 끊임없이 계속된 일본의 독도 불법 침입 시도에 맞서 독도의용수비대는 형편없는 장비와 아주 적은 인원으로 목숨을 걸고 일본의 침입을 막아냈다.
독도의용수비대가 주둔하기 전 1년간 일본인들의 독도 불법 상륙 및 일본 영토 표지 설치 등이 반복됐지만 독도의용수비대가 주둔한 이후부터 국립 경찰에 독도경비 업무를 인계할 때까지는 일본인들의 독도 상륙이나 영토 표지 설치는 결코 허용하지 않았다.
어민들이 독도 해안에서 안전하게 미역 채취와 고기잡이로 생계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독도의용수비대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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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도 할아버께서 받은 훈장과 표창장들. |
말 그대로 외로운 섬 독도에서 힘들었던 점을 여쭤봤다. “한 달에 한 번씩 교대하는 게 힘들었지. 겨울에는 40일도 되고 50일도 되고, 심지어는 파도 때문에 두 달 가까이 있을 때도 있었거든. 그래서 식량 문제로 힘들었어. 교대 때 배를 타고 나오다가 풍랑을 만나 3일 동안 표류하며 죽을 고비를 넘긴 적도 있었고, 또 여름에는 깔따구(깔따구: 모기처럼 생겼고 좁쌀만큼 작지만 한 번 물리면 심하게 붓고 통증이 엄청 나다.) 때문에 너무 고생했어. 서도에 가면 물골이라고 물이 조금씩 나오는 데가 있는데 물통을 들고 가서 담아와 밥을 해 먹곤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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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매일 산책 나와 독도 쪽을 바라본다는 정원도 할아버지. |
아직도 일본의 독도 침탈 야욕 소식을 들을 때마다 참 답답하다 하셨다. 요새는 높은 산에 못 가는데 젊을 때는 높은 산에 올라가 독도를 늘 바라보셨단다. 옛날에는 독도가 하루종일 보이는 날도 많았는데 요새는 자동차 매연이 많아서 그런지 뿌연 날이 더 많아 옛날보다 독도가 잘 안 보인다며 아쉬워도 했다.
아무도 독도를 돌보지 않을 때 힘들게 지키느라고 정말 고생했고 수고했다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고 감회가 남다르다는 정원도 할아버지. 세월이 흘러도 마음은 아직 독도 어딘가에서 동해 바다를 지키고 있는 듯하다.
“바다 날씨가 좋아 독도에 접안이 가능하겠습니다.”
독도로 향하는 돌핀호에서는 선장의 이 한 마디가 가장 반가운 말이라고 한다. 울릉도에서는 날씨가 좋아도 독도 접안지의 파도가 너무 세서 다시 울릉도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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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 위에서 바라본 동도(왼쪽)와 서도(오른쪽). |
울릉도에서 관광객을 태운 배가 독도에 접안을 하면 반갑게 맞이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민국 최동단 독도를 지키고 있는 독도경비대원들이다. 광복절을 앞두고 찾아온 많은 관광객들의 사진을 찍어주고 함께 사진을 찍기도 한다.
독도경비대 김영찬 상경은 “관광객을 맞이하는 일은 독도경비대원들에게 독도를 지키는 것 다음으로 중요합니다. 독도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우리 땅의 소중함을 느끼도록 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관광객들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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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객들을 반갑게 맞이하는 독도경비대원. |
독도경비대는 동도와 서도 가운데 전체 면적 7만3297㎡, 높이 98.6m인 동도에 자리 잡고 있으며 헬기장과 등대, 접안시설 등도 동도에 마련돼 있다.
울릉경비대에서 30여 명의 대원을 약 두 달에 한 번씩 교대로 파견한다. 나무그늘 하나 없는 여름엔 더위와 싸워야 하고, 겨울엔 동해바다의 매서운 바람에 맞서야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가장 큰 경계 대상은 역시나 독도 인근 바다에 나타나는 일본 경비정이다. 작년 한 해만 해도 백여 차례, 올해도 벌써 40여 차례나 계속된 일본 경비정의 출현에 맞서 경고방송을 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해군 공군과 함께 즉시 준비 태세를 갖추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이들에게 가장 큰 경계 대상은 역시나 독도 인근 바다에 나타나는 일본 경비정이다. 작년 한 해만 해도 백여 차례, 올해도 벌써 40여 차례나 계속된 일본 경비정의 출현에 맞서 경고방송을 하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해군 공군과 함께 즉시 준비 태세를 갖추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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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경비정 등 외부세력의 침범에 대비해 24시간 해안경계를 하고 있는 독도경비대. |
관광객들 중 엄마, 할머니뻘 되는 분들이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해줄 때 제일 보람을 느낀다는 대원도 있고, 독도에 대한 일본의 도발을 보고 들으며 어렸을 때부터 독도 근무가 꿈이었다는 대원도 있다. “하루 종일 고된 훈련을 끝내고 종종 막사에서 왜 우리가 독도를 지키나 하는 토론을 하며 고민을 하는 것, 그것이 독도를 수호할 수 있는 큰 힘이 됩니다.” 독도경비대 이성곤 작전팀장의 말이다.
지금도 겨울엔 눈보라가 치고 찾는 사람들도 없어 오직 대원들뿐이라는 외로움, 그리고 물 걱정 때문에 투철한 사명감 없이는 견디기 힘들다며 독도를 지킨 선조들을 생각하면 존경스럽다는 송지원 독도경비대장. 광복 70 주년을 맞는 독도경비대장의 각오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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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지원 독도경비대장. |
“독도는 지정학적으로 우리나라와 일본 중간에 있어서 전략적으로 아주 중요한 곳입니다. 조금 더 젊을 때 국토 최동단 독도를 지키고 싶습니다. 해안 경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고 일본의 도발, 침투에 대비해서 우리 영토를 굳건히 지킬 생각입니다.”
약속. ‘독도는 약속이다.’라는 어느 독도경비대원의 말이 가슴에 남는다.
대한민국의 심장인 독도를 지키겠다는 이들의 굳건한 약속이 있어서 광복 70주년을 맞는 독도는 외롭지 않고 앞으로도 대한민국의 최동단으로 영원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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